작성자 :   잭 푸넨 카테고리 :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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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교만을 깨뜨리시는 한 가지 방법은 지도자를 통해서 우리를 바로잡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신자들이 교정을 받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심지어 두 살짜리 아이도 교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 특히 그것이 공개적인 것이라면. 공개적인 교정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영적 권위가 부족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주님 안에서 당신 위에 누군가가 당신을 바로잡을 때, 그가 가혹하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비록 교정을 받을만하지 않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 당신의 지도자가 당신을 교정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서 계속해서 겸손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적들에게 공개적으로 굴욕을 당하시고 누명을 쓰셨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따라가야 할 본보기를 주셨다. 비록 하나님께서 적이 여러분을 비판하도록 허락하신다 해도, 그의 비판에 진실이 있는지 자문해 보라.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무료검진을 해주시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정밀검사"를 했는지 또는 정밀검사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신경 쓰지 마라! 그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은 그"정밀검사"가 당신의 삶에서 예수님을 닮지 않은 어떤 것을 드러내는지 여부이다. 우리의 적은 종종 친구들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진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비판을 거짓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내 얼굴에 검은 얼룩이 묻었는데 적이 그것을 가리켜준다면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가서 얼굴을 씻을 수 있다! 그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내게 말했거나 창피를 주려 해도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것이 베드로와 가롯 유다의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베드로는 어리석게도 주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하자, 주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며 베드로를 엄하게 꾸짖으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람에게 하셨던 가장 강한 질책이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에게는 단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탄"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가장 강한 질책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꾸짖으신다(계 3:19). 곧이어,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쾌해하며 주님을 떠날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0,66-68). 베드로가 들은 영생의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우리는 교정의 말씀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말로 바라보는가? 그것이 베드로가 교정을 바라본 방식이고, 그것이 그를 지금의 그로 만들었다. 베드로가 주님의 교정을 받아들인 다른 일이 또 있었다. 베드로는 마지막 만찬에서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부인하더라도, 그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주님께 말했다. 주님은 즉시 베드로가 앞으로 12시간 안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답변에 불쾌해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주님은 마침내 오순절 날에 그를 수석 사도와 대변인으로 세우셨다. 베드로가 교정을 받고 겸손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베드로를 높이셨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후, 베드로전서 5장 5, 6절에서 우리 모두에게 항상 겸손할 것을 권한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행동함으로써 결코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베드로가 교정을 대하는 태도와 달리, 가롯 유다의 교정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을 때, 유다는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은 낭비다,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요 12:5; 마 26:10-13). 예수님은 유다를 부드럽게 고쳐주시고, 그 여인을 가만두라고 하시며, 그 여인이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셨다. 하지만 유다는 기분이 상했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마 26:14), 유다는 즉시 대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동의하는 것을 읽게 된다. 이것의 타이밍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유다는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바로잡아 주셨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하신 말씀은 그 여자의 행동에 대한 그의 평가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신이 부서지지 않았을 때, 작은 것 하나로도 당신을 화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유다의 반응에 대한 영원한 결과를 보라. 그리고 베드로의 반응에 대한 영원한 결과를 보라. 둘 다 교정을 받는 테스트를 받았다 - 하나는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통과했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테스트를 받고 있다. 공개적인 교정이 우리를 불쾌하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간의 명예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명예를 추구하는 것에서 스스로를 씻어낼 수 있도록 지금 그것을 아는 것이 좋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인간의 의견에 대한 노예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상황을 허락하셨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씻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교정을 대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하자 - 주님이 직접 그의 영으로 바로잡아 주시든지 다른 사람을 통해 고쳐 주시든지. 이것이 우리 모두의 영생의 길이다. 우리가 겸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것이고, 적절한 때에 그는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