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잭 푸넨 카테고리 :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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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과 달리 이삭은 아브라함의 힘의 산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때쯤에는 불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삭은 하나님이 무력한 아브라함을 강하게 하심으로써 태어났다.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섬김의 유형이다. 하나의 "이삭"은 천명의 "이스마엘"의 가치가 있다. 모든 "이스마엘"은 마침내 쫓겨날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얼마 동안 지킬 수 있었지만,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쫓아내라고 하셨다(창 21:10-14). 이삭만이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영적 교훈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 결과인 그 섬김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타버릴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 곧 지나가고;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이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하신 일만이 영원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사시고 역사하심을 따라 살고 일했다(갈 2:20: 골 1:29). 따라서 그의 삶과 수고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일했다.

​창세기 16장 16절을 보면,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다. 바로 다음 절(창 17:1)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을 때 아브라함이 99세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13년의 간격을 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무력해질 때까지 기다리셨던 해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무력해질 때까지, 그의 약속을 성취하실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종들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들이 그들의 무능함을 인식할 때까지 그분은 그들을 통해 일하실 수 없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야 했다. 그는 자신이 무력해져야 진정으로 믿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로마서 4장 19-2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몸이 능히 아들을 낳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염려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믿음이 강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로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는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섰기 때문에, 불신앙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언제 그러한 믿음을 나타낼 수 있었는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든 확신이 사라졌을 때였다. 우리도 완전한 무력감 상태에 이를 때만 진정한 믿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니, 아무 육체도 그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활동 상태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것은 오류의 또 다른 극단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용하여 이삭을 낳으셨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삭은 아브라함을 떠나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렇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탄생과 이삭의 탄생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아브라함이 아버지였다. 그러나 첫 번째는, 자신의 힘에 의존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했다. 그것이 차이였다 -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 차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