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신 분이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을 사랑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진실에 대한 사탄의 왜곡이다.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그들의 하늘 아버지가 새들을 먹이시고 들의 꽃들을 옷 입히신다면, 그들을 확실히 돌봐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들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하늘 아버지가 그들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마 6:26-34).
예수님은 또 제자들에게 세상의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틀림없이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7:11).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매우 기초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실 것을 정말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드러움과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아버지처럼 보살펴 주시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제한한다. 당신은 기도할 때, 당신의 말을 듣고 기뻐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정말 믿는가?
성숙한 신자여야만 하나님이 들으실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 아버지는 어떠한가? 만약 자녀들이 많이 있는 아버지가, 3살짜리 딸보다 20살짜리 아들의 말을 더 많이 들어 주는가? 아버지가 그의 어린 딸에게 "너는 나에게 말하기에 너무 어리단다. 나는 네 말을 들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 아버지는 큰 아이들보다 막내의 말을 더 잘 들어준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그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버지로)를 앎이라"(히 8:11)라고 말한다. 막내가 먼저 언급되는 것을 주목하자!
비록 어제 거듭났더라도, 하나님께 담대하게 "오 하나님,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당신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과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도록 격려해 주신 방식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봐주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아버지인 하나님께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만 믿음이 생겨날 수 있고,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전혀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그의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시편 84편 11절에 말씀하시길,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37편 4절에서 이르기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했다. 구약 성경의 이러한 약속들은 신약 성경의 예수님에 의해서 더 많은 약속들과 함께 보증되고 공식화되고 더 확대된다.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이다.